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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톡] 아이유는 왜 '나의 아저씨'를 선택했을까?

기사입력2018-03-3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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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인' 이후 연기보다는 예능과 음악에 집중해왔던 아이유가 다음 출연작을 고른다. 그동안의 드라마 성적이나 배우로서의 연기력을 입증하진 못했지만 최고의 스타인 아이유에게는 여러편의 시놉시스가 들어온다. 앨범과 공연, 음악 작업 외의 스케줄을 맞춰서 하나의 드라마를 선택한다. 연출은 '미생'과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 작가는 '또!오해영'의 박해영 작가다. 제작진의 필모그래피만 본다면 어떤 여배우라도 탐내할 작품이다. 제목은 '나의 아저씨'다.


비단, 제작진이 믿음직 할 뿐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 역시 아이유의 이미지를 반전시킬만한 기회다. 모진 고초에도 씩씩하게 할머니를 책임지며, 언제 제대로 웃어봤는지도 알 수 없을만큼 억척스럽고 외롭게 살고 있는 20대의 가장. 사채빚을 갚느라 닥치는 대로 일하고 세상에 대한 믿음따윈 없다. 믿는 것은 자기 자신과 돈. 냉소와 불신을 입꼬리에 걸치고 사는 무표정한 여자애. 귀여운 면이라곤 일도 없는, 여자가 보기에도 멋있는 여자. 일단 대본이 좋았다. 아이유의 마음은 움직여졌을 것이다. 아이유의 캐스팅 소식과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제목이 함께 기사화 되면서 이렇게나 후폭풍이 거셀 거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욕설이나 주사가 심하다거나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나 추태를 일삼는 중년 남성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아저씨들은 싸잡혀서 '개저씨'라 불리며 욕을 먹는다. 제작진은 이 시대의 아저씨들에 대한 작품이 나올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드라마를 준비했다. '아저씨'라고 통칭되지만 어차피 법적으로 '아저씨는 몇 세부터 몇 세부터의 결혼한 중년 남성'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다.

어차피 개개인의 모여 아저씨들이라는 집단으로 불릴 뿐이다. 당연히 아저씨 중에서는 좋은 사람도 있고, 이상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아저씨 중에는 아버지이자 아들,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직장에서는 자존심을 바닥에 내려놓고, 집에 가면 외롭다고 말한다. 젊은 세월 가족 먹여 살리느라 야근을 밥먹듯이 하느라 아이들 자는 모습 밖에 보질 못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족과는 서먹해진 아버지, 아저씨들. 상식적으로, 열심히,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그저 제 몫을 다하며 살았던 아저씨들에 대해서 드라마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저씨에게 뒤늦은 봄을 선사할 여주인공으로 아이유가 캐스팅되면서 여주인공의 나이는 대폭 어려졌고, 캐릭터에게는 '아저씨를 알아볼만한 눈'을 가지기 위한 각종 고난과 아픔이 선사되었다.



박동훈(이선균)은 건설사 부장이다. 하는 일은 건축구조기술사. 건설회사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은 '건축사'냐고 묻지만 건축구조기술사는 건축사의 그늘에 가려있는 직업이다. 건물의 안전과 구조를 측정하고 만드는 일. 사내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줄 설 눈치도 능력도 없다. 무사안전제일주의로 지금까지 그저 내 일만 묵묵히 해왔다. 그러나 마흔 중반으로 넘어서면서, 이렇게 살아온 게 과연 잘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보다 잘 나가는 변호사 아내는 아이를 조기유학 보냈고, 아내와 소원하게 산지도 오래됐다. 직장에서는 대학 후배가 대표이사가 되면서 뜬금없이 박동훈만 말석으로 밀려났다. 그는 모르지만 실은 아내 역시 그 대표이사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형과 막내동생, 두 사람과 자주 술자리를 가지고 그들의 신세한탄을 들어주며 노모의 안색도 챙겨야 한다. 형과 동생 모두 반백수다.



서로 다른 종류의 삶의 무게, 어찌되었든 무겁기 그지 없는 이 무게가 어깨 위에 얹혀져 있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다. 아무도 몰랐던 남자의 그늘을 여자가 알아보고, 아무도 몰라봤던 여자의 추운 발목을 남자가 알아본다. 지안은 동훈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게 재미없어 보여요. 무기한 징역수처럼", 그럼 동훈은 술 마시며 동생에게 읊조린다. "나를 알아보는 애가 있어. 그게 슬퍼." 이 두 남녀가 동갑이고, 배우는 아이유와 이선균이 아니라고 가정해보자. 자, 이 드라마는 지금처럼 온갖 논란의 포화 속에서 비난받을만 한 드라마일까?


사실 지금의 논란 중에서는 '나의 아저씨'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우리 드라마는 어린 여자애랑 나이든 남자의 로맨스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휴먼드라만데 왜 보지도 않고 욕부터 하나...'싶을 지도 모른다. 특히 지난 3회 방영 후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아이유와 이선균의 키스신'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실제로 입을 맞췄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지안이 동훈을 도발하기 위해 키스를 시도하지만 동훈이 제지를 하는 장면이고 이후에 동훈은 지안에게 강력하게 '이러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 제목으로 기사만 접한 이들은 '헉, 역시 그랬고만, 나이 많은 남자랑 나이 어린 여자의 키스신이고 더구나 여자가 강제로 시도했다고? 역시 문제야 문제 쯔쯧' 혀를 찼을 것이다. 감독은 이러한 문제제기를 의식했는지 원경에서 촬영하고 아예 키스를 안 하는 것처럼 촬영했다. 사실 문제는 지안이 동훈에게 키스를 시도하는 게 굉장히 뜬금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어린 여성과의 연애를 시작할 때 '여자가 먼저 대쉬하고 키스 시도도 먼저 했다'는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장면일 수도 있다. '나의 아저씨'는 전반적으로 삶에 애환이 많은 아저씨들을 위한 변명으로 러닝타임을 전부 할애하고 있으니 이런 의심을 사도 어쩔 수 없다.

제작진이야 처음부터 아저씨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 논외로 하고 의문이 드는 것은 '아이유는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을까'다. 일단 '이지안'이라는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자기 할 말을 하고 사는 캐릭터라는 데 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지안은 주체적이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모든 사건을 직접 해결하고, 자기 문제에 타인의 동정이나 연민조차 개입시키지 않는다. 그녀는 할머니의 보호자이고, 가족의 가장이다. 누구보다 머리가 좋아서 '나의 아저씨'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직장 내 사건들도 거의 지안이 주체가 된다. 누가 자기 옷깃을 건드리면 그 손길을 낚아채서 더 큰 복수와 협박을 해주는 게 이지안이라는 여자다. 드라마에서 업무보다는 사내 정치에 주력하는 모든 부장, 상무, 대표들은 멍청하게 그려지고, 지안이 벌이는 사건들은 그들을 함정에 빠트리거나 구원한다.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뇌가 있어 보이고, 누구에게도 굽신거리지 않는 건 '너네 아저씨들'이 아니라 이지안이라는 여자 뿐이다.


과거 살인 경력까지 있고 비밀스러우며 모든 사건의 주동자인 이 여자의 특성은 '어리다'가 아니라 '강하다'이다. 사채업자에게 맞으면서도 '너랑 같은 공기 마시기 싫다, 역겹고 토나온다'라고 말하며, 이 드라마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들보다 머리가 좋고 영리하며 행동력있다. 지안이 동훈에게 공감을 하게 되는 것 역시 동훈을 도청하면서 그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격한 행동을 하는 것을 듣고서이다. 같은 상처를 가진 것을 인간대 인간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지안에게 '아버지 뭐 하시냐'고 가볍게 물어본 동훈에게 '그런 거 왜 물어봐요? 난 아저씨 아버지 뭐 하는지 안 궁금한데. 그런 질문 실례에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어디 사냐, 부모님 뭐 하시냐, 앞으로 뭐 할거냐'라고 물었던 수 많은 아재들에게 날리고 싶었던 사이다 발언을, 지안은 눈 똑바로 뜨고 하는 여자다. 상사에게도 애교섞인 대답조차 하지 않고, 항상 '마이웨이'로 무서울 것 없이 사는...'사랑스럽다, 귀엽다'라는 수식은 절대 할 수 없는 이 강한 여자에게 아이유는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삶이 고단한 아저씨들과, 그리고 그런 아저씨의 미덕을 봐주는 여자. 두 사람의 휴먼 드라마로 아직까지는 보이지만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고 멜로로 발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톤은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직장 내 장면들은 '미생'처럼 회색빛이고, 유독 자주 나오는 장면이 남녀 주인공이 무표정하게 지하철, 버스로 출퇴근 하는 장면이다. 흐릿한 도시인의 표정 속에서 두 사람은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 '나의 아저씨'가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이 '아저씨들 중에도 좋은 사람 많다'로 그친다면 아마도 초반에 가해졌던 의혹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밖에 안 될 것이다. 지안을 '아저씨들을 발견해주는 여자애'로만 머물게 해선 안 되는 이유다. 더욱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그리고 계속 이기적이었으면 한다. 삶이 이렇게 구질구질하고 피폐한데, 여기에 박동훈 아저씨의 문제까지 짊어져서는 너무 하지 않겠는가.

다음회, 지안의 대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호의를 받을 때 세상의 이치를 말하는 이런 여자 주인공. 좀 더 두고 보자.

iMBC 김송희 | 사진 tvN 방송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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